[토니피터] 부자관계
피터는 처음 아버지의 등을 보았을 때를 생각했다. 넓고 커다란, 제 두손으로도 다 안을 수 없었던 것을 기억한다. 상념에 젖은 눈길로 서재에 우두커니 앉아있던 그를 기억한다. 그의 소매를 끌어당기면 조금 못마땅한 얼굴로 저를 끌어안아준다. 어린아이인 자신은 그의 무릎에 앉아 신기한 얼굴로 그가 쥔 얇은 깃펜의 촉이 잉크에 푹 담겨지는 것을 구경하던 것을 기억한다.
거칠거칠한 수염을 더듬어보면, 이따금 가슴 속에서 무언가 몽글몽글하고 올라오는 것이 있었다. 어머니의 기억은 이제 흐릿해졌을 정도다. 얼굴도 잘 기억나지 않았다. 아주 어릴 때의 부드럽고 따듯했던 감정만이 남아있을 따름이었다. 이따금 아버지와 함께 영화를 보러가곤 했다. 대부분의 영화는 마초적인 향취가 물씬 나는 것들로 언제부터인가 남자 주인공들에게 눈길이 가기 시작했다. 사실 언제부터 그랬는지는 자신도 자세히 알지 못했다.
토니는 언제부터인가 아들과 대화가 단절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할 지 몰랐다. 집에 돌아오면 항상 반기는 것은 불이 꺼진 거실과 소파정도 였을까, 아들과 맞는 유일한 취미는 영화였다. 그렇다고 해서 둘 사이에 토론이나 잡담이 오간 적은 없었다. 그저 거의 약속이나 한 듯이 언제부터인가 둘 만의 꾸준한 취미가 되었다. 그와 처음 봤던 영화가 생각났다. 집에서 홈시어터로 틀었던 대부였다. 아들과 보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했다. 일반적인 아들과 아버지 관계라면 분명히, 시도는 성공적이었어야만 했다. 아들은 느와르나 마초적인 것들에 대해 흥미를 느끼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 이후로도 계속 그런 영화를 골라보며, 아들은 항상 무심히 질문 하나를 던지곤 했다.
"주연 배우가 누구에요?"
영화를 보다가 가끔씩 그의 눈길을 보면, 묘하게 들끓는 시선이었던 것이 기억난다. 그 묘한 들끓음을 토니는 잘 알고 있었다. 청소년기에 처음 흑백영화의 미녀 여주인공을 보면서 제가 느꼈던 감정과 비슷한 시선.
무의식적인 자각이었을까. 일말의 불안감이 더더욱 자신을 몰아붙였는지도 모른다. 남자가, 분명 이상적인 롤모델을 볼 때의 시선과, 매력적인 여성을 볼 때의 시성은 사뭇 달랐다.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아들의 학교 성적은 나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좋은 편이었다. 또래와 잘 지내지 못하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집에 친구를 데려온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부모의 참관일에 어렵사리 참여했을 때도 분명 아들의 담임은 전혀 아무런 문제도 없다는 양 오히려 칭찬일색이었다. 토니는 그 말에 기분이 좋아졌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이 중대한 착각을 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그 모종의 반짝거림은 잊을래야 잊을 수가 없었다. 토니는 제 자신도 제대로 된 아버지를 가지고 있지 않았단 생각에 더욱 더 아들에게 좋은 아버지로, 이상적인 아버지가 되고 싶어했다. 그게 문제였던 걸지도 모른다. 그때까지는 아무 문제도 없었다. 아무것도 문제될 것이 없었다.
그리고 퇴근하고 오는 길에, 다른 남자와 키스하고 있는 아들을 발견했다.
토니는 겉잡을 수 없는 분노에 휩싸였다. 신기하게도, 아니 그게 당연한 것일지도 몰랐지만. 놀라지는 않았다.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알고 있었던 게 아니었을까. 아들은 화들짝 놀라며 상대방과 떨어졌다. 토니는 저도 모르게 상대에게 폭력을 휘둘렀다. 코피가 터지고, 앓는 소리가 났지만 귀에 들리지 않았다. 아들이 그제서야 제 팔을 끌어당기며 제발 그만 하라고, 사람 죽겠다고 매달리며 우는 순간 그는 눈 앞의 아들을 보고 뺨을 때렸다. 그는 아들 스스로가 자초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은 잘못한 것이 없다고. 아들은 처음 맞닥뜨리는 제 분노에 떨었다. 상대는 코뼈가 부러졌다고 했다. 병원비를 지불하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다. 그 이후 아들은 제 방에 틀어박혔다. 문은 잠궈두지 않았다. 하지만 문은 그저 문으로써의 기능만을 담당할 뿐이었다. 토니의 마음 속에 있는 아들의 그 시선은 매우 컸다. 동경심과는 다른, 그 시선을.
아들은 사춘기였다. 부모가 아닌 다른 누군가를 마음 가득히 담을 수 있는, 열렬히 사랑해보고 아파할 수 있는 시기였다. 만약 아들이 제 또래의 소녀였다면 달랐을 것이다.
그저 평범한 아버지처럼, 그 또래 사내아이들에 대한 얘기나 짖궂은 말 몇마디 쯤 던지며 아버지다운 조언 몇마디면 해결될 일이었다. 아니면 울적해하고 고민하며 스스로 해결하는 과정을 자상하게 바라보았을 수도 있었다. 다만, 아들은 '소녀' 가 아니라 '소년'이었을 따름이다.
피터는 아버지에게 들키고 난 후 공황상태에 빠졌다. 사실 저도 왜 거기서 그런 행동을 했는진 몰랐다. 물론 만나던 상대는 가볍게 사귀고 있을 뿐이었다. 검고 짧은 머릿칼에 푸른색 눈동자. 듬성듬성난 수염. 그 거칠거칠한 감촉이 좋았다. 언제부터였을까, 처음 남자에게 고백을 했던 건 중학교 때 즈음 이었다. 확실히 처음 고백은 대실패였다. 믿었던 친구마저 저를 따돌리고, 게이라며 욕하고 침을 뱉었다. 물론 아버지에겐 철저하게 숨겼다. 그가 학교에서 남들과 싸우고 멀어질수록 더욱 더 자기 방에 틀어박힐 수 밖에는 없었다. 항상 아버지에겐 아무렇지 않은 척, 괜찮은 척 하면서. 아버지는 그에게 단 하나밖에 없는 가족이었다. 그리고 사실 조금씩 깨닫고 있었다. 그와 함께 나란히 앉아 영화를 볼 때면, 두근거리는 감정이 일곤 했다. 그것은 영화 속의 사내다운 남자주인공을 향한 감정인줄로만 알았다. 그 배우들에 누군가가 덧씌워져 보이기 전까지만 해도.
토니는 의사에게 찾아갔다. 정신적으로 아들에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가 하며, 절박한 심정으로 물었다. 사실 토니는 동성애라는 건 정신병의 일종이라고 믿었다. 남자는 남자를 사랑할 수 없는 법이라며, 그렇게 맹신하고 있었다. 의사와 말을 하면 할 수록 토니는 혼란에 빠지는 기분이었다. 그것은 정신병이 아니며, 아들과의 접점을 찾으라는 말. 아들에게 먼저 다가가야 한다는 말.
'접점'
토니는 죽은 아내를 생각하며 울었다.
피터는 아버지가 우는 것을 몰래 지켜보곤 했다. 그리고 어머니에게 조금씩 화가 났다. 어째서, 어째서죠. 피터는 점점 겉돌 수 밖에 없었다. 집에 들어와서도 아버지와 눈을 마주친 적이 거의 없었다. 저녁정도는 집에서 같이 먹자는 아버지의 말이 있었다. 피터는 가끔 외박을 하기도 했지만, 보통 저녁은 집에와서 먹었다. 아버지는 언제나 피곤하고 지친 기색이었지만, 저에게 억지로 말을 걸려고 부단히도 노력하는 모습이 뻔히 보이곤 했다. 피터는 그런 아버지에게 맞춰줄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아버지가 그에게 매달 용돈을 주곤 했지만 피터는 제멋대로 남자들에게 몸을 팔기 시작했다. 피터는 성인 남자의 커다란 등이 좋았다. 체격이 건장하고 듬직한, 그런 남자. 되도록이면 제 아버지 뻘의 나이이면서 흑발의 푸른눈을 가진. 몇번 정도는 깊은 관계를 가지기도 했었다. 전부다 안 좋은 형태로 끝나버리곤 했지만.
피터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제가 어머니를 질투한다는 것을. 이미 죽어버린 사람에게, 그것도 제 부모에게 그런 생각을 품는 다는 것 자체가 증오스러웠다. 아버지는 아내 말고는 다른 여자에게 관심이 없어보이는 것처럼 보였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피터는 제 방문을 아주 조금만 열어놓은 채 아버지를 훔쳐보곤 했다. 항상 흘깃흘깃 곁눈질로 쳐다보면 아버지는 상념에 젖은 눈길로 언제나 서재에 앉아있었다. 그 섬세한 손동작을 보고있는 것은 언제나 즐거웠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면 그의 턱선이나 손 끝을 일일히 관찰하고 있는 자신이 있었다. 가끔씩 그가 고개를 돌려 제 방문을 쳐다볼 때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방문을 큰 소리나게 쾅 닫아버렸다. 아버지는 언제나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렸다. 두어번의 노크 소리가 끝나면 저녁을 먹으러 오라던지, 아니면 무언가를 사왔다던지 하며 자신을 불렀다. 피터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항상 방문 앞에 무언가를 두고 가곤 했다. 대화는 거의 없다시피 했다. 그저 아버지와 함께 있을 때는 영화를 볼 때 정도였을까.
아들을 인정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둘 사이엔 아무 대화도 없었지만, 토니는 그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단 하나 뿐인 아들이었으니까. 제 아내가 남긴 단 하나뿐인 가족이었으니까. 사실 토니는 그에게 마저 버려진다면 아무런 희망도 남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억지로 버티고 있기는 하지만, 아내를 잃은 후로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벅찼다. 아들이 그와 대화를 일방적으로 단절시키기 전까지만 해도 아들은 그녀를 닮은 유일한 자신의 안식처였다. 물론 지금도 많이 변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는 자신만의 쉼터였다. 항상 제 무릎에 앉아 웃어주던 아들을 안고 있으면, 마음이 가라앉는 기분이 들곤 했다. 토니는 오랫만에 어린 아들의 꿈을 꿨다.